결혼 후 함께 생활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일상이 바로 ‘식사’입니다.
같이 밥을 먹고, 음식을 만들고, 식탁에서 하루를 이야기하는 이 평범한 시간이
사실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가장 근본적인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국제결혼 부부에게 있어 ‘음식’은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방식, 식사 예절, 재료 구성, 향과 맛에 이르기까지
삶의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민감한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저희 아내는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매운 음식보다는 달고 짠 요리를 선호하는 편이었습니다.
반면 저는 어릴 때부터 매운 찌개, 젓갈, 김치류에 익숙한 한국의 전형적인 식문화를 가지고 있었기에,
결혼 후 같은 식탁에 앉았지만 같은 식사를 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된장찌개가 너무 짜다고 느끼고, 깍두기는 발효된 맛이 부담스럽다며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먹는 건 중요한 일이야. 그런데 여기는 전혀 익숙하지 않아”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외국인 배우자가 한국 음식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겪었던 낯섦과 거부감,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풀어갔는지
생활 속 사례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서로 다른 식문화를 조화롭게 받아들이기 위한 부부 간의 ‘작은 전략’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국제커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낯선 향과 발효 음식에 대한 거부감
한국 음식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발효 식재료의 사용입니다.
김치, 젓갈류, 청국장, 된장 등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고 매력적인 맛이지만
외국인에게는 냄새나 향, 질감이 익숙하지 않아 거부감을 주기 쉽습니다.
저희 아내는 김치볶음밥은 좋아했지만, 생김치는 거의 먹지 못했습니다.
특히 익은 김치의 신맛은 입에 맞지 않았고, 젓갈류는 냄새만 맡아도 식욕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된장찌개도 끓일 때 나는 향 때문에 주방에 머무르지 못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자, 식탁이 점점 공동의 공간이 아닌, 각자의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처음엔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못 먹는다는 게 이렇게 외롭구나’ 싶었고,
심지어 ‘이해해주려 하지 않는 건 아닐까’라는 오해까지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또한 아내의 모국 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강한 향신료나 코코넛 오일 맛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발효 음식은 강요하지 않고,
유사한 대체 식품이나 같이 요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예를 들어 익은 김치 대신 덜 익은 백김치를 먼저 시도하거나,
된장찌개는 쌈장 베이스로 순화된 맛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도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김치볶음이나 김치전처럼 조리된 형태의 김치는 즐겨 먹게 되었고
김치찌개도 맵지 않게 끓이면 한 그릇 정도는 잘 먹는 단계까지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맵고 짠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와 몸의 반응
한국 음식은 대체로 맵고 짠 편입니다.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소금이 기본 조미료이고
찌개나 볶음류는 대부분 자극적인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배우자에게는 이러한 자극적인 맛이 단순히 취향 차이가 아니라
신체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내는 몇 번 매운 음식을 억지로 먹은 뒤, 속이 쓰리거나 위가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매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뿐 아니라
식사 자체에 대한 긴장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식사 전부터 “오늘은 뭐가 나올까?”, “맵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심할 때는 ‘밥 먹는 게 두렵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단순히 입맛 문제가 아니라
식사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지며
부부간의 일상 대화나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식사는 하루의 중심이자 감정을 나누는 시간인데,
그 시간이 불안의 원인이 되면 그 자체로 부부의 거리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내의 입맛에 먼저 맞춘 식단을 기본으로 하되
조금씩 한국 식재료나 조리법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조율했습니다.
예를 들어 달달한 볶음요리에 고추기름을 아주 소량 넣어 향을 익히게 하거나,
국은 김치국 대신 맑은 미역국, 황태국부터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직접 함께 요리하며 조미료의 양을 조절하고,
‘맵지 않은 버전’ ‘약간 맵게’ ‘한국식 그대로’라는 세 가지 기준을 아내와 공유해
자신의 기호를 정확히 파악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음식 문화와 식사 방식에서 오는 생활 속 불일치
외국인 배우자와의 식사에서 단순한 재료나 맛 외에도
식사 방식 자체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은 반찬을 함께 나눠 먹는 구조이며,
젓가락 사용, 밥과 국의 조합, 음식 순서 등이 정해져 있는 반면,
다른 문화권은 개인 접시에 각자 덜어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하거나
수저가 아닌 포크·나이프를 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내는 처음에 가족 식사 자리에서
음식을 덜어먹지 않고 함께 나누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젓가락으로 반찬을 덜고, 국물 있는 반찬을 같이 먹는 방식은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식사 도중 손을 멈추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또한 식사 시간대나 음식의 양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저는 한국식으로 세 끼를 일정하게 챙겨 먹는 반면,
아내는 아침은 가볍게, 점심은 늦게, 저녁은 과일이나 샐러드 위주로 먹는 식습관이 있었기에
식사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자주 어긋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식사의 형식보다 식사의 의미를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먼저 식사에 대한 생각과 문화 차이를 대화로 나누었고,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하루 한 끼만은 함께 제대로 먹자’는 작은 약속을 정했습니다.
또한 외식 시에는 뷔페나 덜어먹는 스타일의 음식점을 선택하고,
집에서도 공용 반찬은 작은 접시에 나눠 담는 방식으로 식탁 문화를 재구성했습니다.
이러한 조정은 아내가 한국 음식 문화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심리적 장벽을 낮춰주었습니다.
입맛을 맞춘다는 건, 마음을 맞추는 일입니다
국제결혼 부부의 식사 시간은 단순한 먹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삶의 방식과 감정, 문화가 오가는 교차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맛’이 맞지 않는다는 단순한 문제는
사실 ‘방식’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며,
무엇보다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에 따라 극복 여부가 달라지게 됩니다.
외국인 배우자가 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판하거나 강요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천천히, 기꺼이 같이 먹고 같이 요리하며
그 속에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가장 건강한 식문화 조율 방식입니다.
지금도 저희 부부는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기 위해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향신료를
한식 레시피에 살짝 더해보며 재미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음식은 문화이자,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매일 조금씩 나누는 과정 속에서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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